분류 전체보기 79

조총의 포화가 말을 멈추게 한 날, 나가시노 전투

조총의 포화가 말을 멈추게 한 날, 나가시노 전투1575년 6월 28일, 일본 전국시대의 흐름을 바꾼 전투가 있었다.지금의 아이치현, 나가시노 지역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단순한 지역 다툼이 아니라, 기병의 시대가 저물고 조총의 시대가 열린 전환점이었다.전장의 배경 – 신겐의 죽음, 그리고 복수심타케다 신겐이 1573년에 급사한 뒤, 그 아들 타케다 가쓰요리는 아버지의 야망을 계승하고자 서진을 시작한다.그의 눈앞에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었다.가쓰요리는 미카와 지역으로 진격하여 나가시노 성을 포위하였다. 이 성은 도쿠가와 진영의 중요한 거점으로, 함락되면 동해방면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위기였다.이에 도쿠가와는 즉시 오다 노부나가에게 지원을 요청하였고, 두 사람은 합류해 3만의 연합군을 편성..

일본의 역사 2025.05.08

진시황, 천하를 삼킨 사내

진시황, 천하를 삼킨 사내폭풍 속의 탄생기원전 259년, 전국시대가 막바지로 치닫던 혼란의 시대. 여섯 나라가 서로를 견제하며 피를 흘리던 그때,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영정(嬴政), 훗날 진시황이라 불릴 사내다.하지만 이 아이의 출생은 맑고 떳떳한 햇빛 아래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음모와 비밀, 정치적 계산 속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영정의 출생은 곧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의 출현을 알리는 천둥 같은 선언이었다.조나라 인질로 잡힌 아버지, 그리고 수상한 탄생영정의 아버지는 영자초(嬴子楚), 진나라 왕족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나라에서 권력에서 밀려나 조나라로 보내진 인질 신세에 불과했다. 조나라에서는 그의 지위가 미미했고, 귀족들의 냉대 속에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

중국의 역사 2025.05.08

천하를 산 여불위

천하를 산 여불위모든 영웅의 탄생 뒤에는, 그를 만든 자가 있었다. 진시황, 영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그를 꿈꾼 사내가 있었다.그의 이름은 여불위(呂不韋).사람들은 그를 ‘상인’이라 불렀고, 그는 그 호칭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장사는 이문을 따지는 것이다. 하물며 천하를 사고파는 것도 거래일 뿐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천하를 샀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계산으로.상인의 눈으로 왕을 보다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의 끝자락.여불위는 위나라에서 태어나 장사를 업으로 삼았다. 사람의 흐름, 권력의 방향, 돈이 모이는 길을 누구보다 빨리 감지하는 눈을 가진 사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나라 한단에서 영자초라는 인질을 보았다.그는 진나라 왕족의 피를 이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

중국의 역사 2025.05.08

칼로 그은 이상(理想) – 왕자의 난과 태종의 등장

칼로 그은 이상(理想) – 왕자의 난과 태종의 등장1398년, 조선 건국 6년째. 나라의 기반이 아직 굳지 않은 이 시기, 피의 정변이 수도 한양을 뒤흔들었다. 제1차 왕자의 난, 조선의 초석을 놓은 이성계의 아들들, 그중에서도 이방원이 벌인 권력 투쟁은 단순한 왕위 쟁탈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도전 중심의 신권(臣權) 국가 구상과, 이방원 중심의 왕권 강화 체제 사이의 충돌이었다.갈등의 시작: 누구를 위한 조선인가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하며 신하의 힘이 군주를 견제하는 체제를 지향하였다. 그는 공신이자, 정권 실세였으며, 공공연히 “왕의 자식이라도 권력이 없어야 백성이 안심한다”고 말하였다. 특히 그는 이성계의 후계자로 장자인 이방원이 아닌, 여섯째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추진하였다. 이방석은 나..

한국의 역사 2025.05.07

정도전, 조선을 설계한 정치 철학자

정도전, 조선을 설계한 정치 철학자“나라는 군주의 것이 아니라, 백성의 것이다.”이 한 문장은 조선의 초석을 다진 정도전의 정치 사상을 잘 보여준다. 그는 무장 이성계와 손잡고 조선을 건국했지만, 그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생각’이었다. 정도전은 조선을 단순히 왕조만 바꾸는 나라가 아니라, 부패한 고려 체제를 철저히 해체하고 새로 설계한 이념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성리학: 조선의 국가 이념정도전의 정치 철학의 핵심은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단순한 철학이 아닌, 인간과 사회, 우주를 관통하는 질서를 해석하는 체계였다. 고려 말에도 성리학은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공부되었지만,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도전에 이르러서였다.정도전은 불교가 타락해 백성의 삶과 멀어졌다고 비판하였다. 고려는..

한국의 역사 2025.05.07

하(夏) 왕조 – 중국 최초의 왕조, 전설에서 역사로

하(夏) 왕조 – 중국 최초의 왕조, 전설에서 역사로하 왕조의 기원과 우의 치수하 왕조는 전설적인 인물인 우(禹)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는 본래 대(鯀)의 아들로, 대가 황하의 홍수를 다스리려 했으나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우가 그 일을 이어받게 되었다. 우는 3년간의 대규모 치수 작업을 통해 황하의 범람을 막고, 이로 인해 농업 기반을 회복시켰다. 우의 치수 사업: 우는 기존의 치수 방식인 수로를 파는 방식 대신 물의 흐름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치수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는 당시의 기술로는 혁명적인 접근이었으며, 이로 인해 황하의 범람을 막을 수 있었다. 우의 치수 사업은 그가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다스린 인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우의 왕위 계승: 우는 자신의 업적을 통해 하 왕조를 창..

중국의 역사 2025.05.06

“새로운 시대를 연 칼끝, 이성계의 선택”

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탄생회군 이후의 정치 상황1388년,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회군했으며, 이는 단순한 군사적 후퇴가 아닌 고려의 지배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었음이 곧 드러났다.회군 직후 그는 정적인 최영과 우왕을 축출하고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했다. 우왕은 폐위되었고, 그의 아들 창왕이 옹립되었으나 이는 명백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정계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개혁파와 기존 권문세족이 대립하는 구도로 재편되었다. 이성계는 조민수, 정도전, 조준, 윤소종 등과 같은 신진 사대부들과 손을 잡고 정국을 주도해나갔다. 이들은 단순히 군사 반란 세력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사상가이자 정치가들이었다.권문세족의 몰락과 개혁 정책기득권 세력인 권문세족은 고려..

한국의 역사 2025.05.06

왜 이성계는 회군을 결심했는가?

위화도에서 시작된 조선 건국의 서막1388년, 한 장군이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고려의 장수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명받고 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군대를 돌려 수도 개경으로 향했다. 이 사건이 ‘위화도 회군’이다.이 회군은 단순한 군사적 항명 이상이었다. 이것은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탄생을 잉태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왜 회군을 결심했을까?당시의 시대 상황14세기 후반 고려는 이미 내부로는 권력 투쟁과 부패, 외부로는 왜구의 침략과 명나라와의 긴장으로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우왕과 권신 최영은 명나라가 점령한 요동을 되찾겠다며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 그들은 고려 최고의 무장이었던 이성계에게 4만 대군을 맡겨 요동 정벌을 명령했다.이성계는 군을 이끌고 압록..

한국의 역사 2025.05.06

왜 고려는 무너져야 했는가 – 조선 건국의 서막

쇠락해 가는 고려, 나라의 틀이 흔들리다14세기 후반, 고려는 이미 왕조의 수명을 다한 모습이었다. 국가는 수십 년간 왜구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고, 국경을 따라 홍건적이 밀려들어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권문세족은 권력과 부를 독점하며 백성을 수탈하고 있었다.그 누구도, 백성을 위하는 자가 없었다.왕은 있었지만 무기력했고, 백성은 있었지만 절망뿐이었다. 정치·군사·경제의 모든 영역이 마비된 나라에서, 과연 누가 희망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권문세족의 부패, 무너진 정의와 공정고려 후기는 말 그대로 기득권의 천국이었다. 권문세족들은 토지를 무한대로 늘리며 전국의 논밭을 사유화하였고,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 백성은 굶주렸고, 국가는 텅 비어갔다. 국가는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고,병사는 무기 없이 싸워..

한국의 역사 202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