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천하를 삼킨 사내
폭풍 속의 탄생
기원전 259년, 전국시대가 막바지로 치닫던 혼란의 시대. 여섯 나라가 서로를 견제하며 피를 흘리던 그때,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영정(嬴政), 훗날 진시황이라 불릴 사내다.
하지만 이 아이의 출생은 맑고 떳떳한 햇빛 아래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음모와 비밀, 정치적 계산 속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영정의 출생은 곧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의 출현을 알리는 천둥 같은 선언이었다.
조나라 인질로 잡힌 아버지, 그리고 수상한 탄생
영정의 아버지는 영자초(嬴子楚), 진나라 왕족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나라에서 권력에서 밀려나 조나라로 보내진 인질 신세에 불과했다. 조나라에서는 그의 지위가 미미했고, 귀족들의 냉대 속에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암울한 상황을 바꾼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여불위(呂不韋)였다. 당시의 거상(大商)이었던 여불위는 '천하의 기이한 물건'으로 영자초를 주목했고, 자신의 정치적 도박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영자초를 진나라로 되돌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쓰고, 조정 내부에서 책략을 꾸몄다.
여불위는 자신의 첩이었던 조희(趙姬)를 영자초에게 바쳤고, 바로 이때 조희의 태중에 있던 아이가 후일의 진시황, 영정이라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때문에 영정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여불위였다는 소문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한 의혹 속에서도 영정은 한단에서 태어나 조나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언제 진나라로 송환될지 모르는 인질이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였다. 이런 불안한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어린 영정은 조심스럽게 자라야 했다.
조나라 한복판에서의 소년기
한단은 조나라의 중심이자, 전란의 상징이었다. 진나라의 공격 위협이 끊이지 않았고, 진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적개심을 살 수 있는 땅이었다. 영정은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언제나 경계하며 자라야 했다.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삶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권력의 본질을 배워야 했다. 사람의 얼굴 뒤에 숨겨진 진심, 거짓과 진실, 힘이 지배하는 세계. 조나라 귀족들의 멸시 속에서 그는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고, 침묵과 인내, 그리고 관찰의 기술을 익혔다.
영정의 소년기는 잔혹한 정치 현실 속에서 단련된 시간이었다. 검이 아닌 말과 눈빛이 칼보다 더 날카로울 수 있음을 배웠고, 신뢰와 배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익혔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돌아가야 할 땅
기원전 250년경, 여불위의 공작이 성공하면서 영정과 영자초는 마침내 진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영자초는 진 소양왕(昭襄王)의 총애를 얻고 후계자가 되었으며, 결국 장양왕(莊襄王)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영정은 다시는 인질이 아닌, 왕세자라는 이름으로 진나라의 미래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조나라 한단에서의 기억은 영정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고통과 모욕, 공포와 침묵 속에서 키워진 그의 심장은 강철처럼 굳어졌고, 언젠가 자신을 얕잡아보던 자들을 짓밟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곧 올 것이었다.
이전글
천하를 산 여불위
천하를 산 여불위모든 영웅의 탄생 뒤에는, 그를 만든 자가 있었다. 진시황, 영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그를 꿈꾼 사내가 있었다.그의 이름은 여불위(呂不韋).사람들은 그를 ‘상인
histoday.tistory.com
'중국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우와 유방의 대립과 한나라의 부상 (1) | 2025.05.11 |
---|---|
조희와 노애 – 황제의 어머니와 궁정 반란자 (1) | 2025.05.10 |
황제를 죽인 환관 – 조고(趙高)의 제국 음모 (4) | 2025.05.09 |
천하를 산 여불위 (1) | 2025.05.08 |
하(夏) 왕조 – 중국 최초의 왕조, 전설에서 역사로 (1) | 2025.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