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해 가는 고려, 나라의 틀이 흔들리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이미 왕조의 수명을 다한 모습이었다. 국가는 수십 년간 왜구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고, 국경을 따라 홍건적이 밀려들어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권문세족은 권력과 부를 독점하며 백성을 수탈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백성을 위하는 자가 없었다.
왕은 있었지만 무기력했고, 백성은 있었지만 절망뿐이었다. 정치·군사·경제의 모든 영역이 마비된 나라에서, 과연 누가 희망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권문세족의 부패, 무너진 정의와 공정
고려 후기는 말 그대로 기득권의 천국이었다. 권문세족들은 토지를 무한대로 늘리며 전국의 논밭을 사유화하였고,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 백성은 굶주렸고, 국가는 텅 비어갔다.
국가는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고,
병사는 무기 없이 싸워야 했으며,
민심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들의 권세를 뒷받침하던 것은 썩은 권력 구조였고, 어떤 개혁도 그들의 이익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정치의 정당성과 효율성이 모두 무너진 시대였다.
외침 속 무너진 군사력과 왕권
왜구는 고려의 해안을 아무 때나 쳐들어왔고, 백성의 마을은 불탔으며 아이와 여인은 노예로 끌려갔다. 반면 고려 조정은 이를 막을 아무런 실질적 수단도 의지도 없었다.
- 1374년, 공민왕이 시해당한 이후, 왕권은 더더욱 흔들렸다.
- 후임 왕들은 권문세족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 국가가 더 이상 국가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신흥 무장 세력의 대두와 변화의 불씨
백성은 버림받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영과 이성계, 지용수, 정지 등 신흥 무장 세력은 왜구를 격퇴하며 군사적 명성을 쌓았다.
이들은 더 이상 고려 조정의 명령에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싸우는 이유와 방향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민심과 실력을 바탕으로 새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위화도 회군으로 시작된 대격변
1388년, 이성계는 명나라를 정벌하라는 조정의 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위화도에서 회군하며, 기존 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장수의 항명이 아니라, 고려라는 체제에 대한 선고와도 같았다.
왕조는 무너졌고,
질서는 붕괴되었으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고려는 외적의 침입에 무기력했고,
귀족은 백성을 수탈하며 사익을 챙겼으며,
왕은 왕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상실하였다.
나라의 존재 이유는 백성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고려는 백성을 지키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고려는 무너져야만 했고,
그 자리에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위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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