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패왕 항우, 천하를 얻지 못한 영웅의 최후, 초한전쟁

오늘의 기록자 2025. 5. 12. 14:32

패왕 항우, 천하를 얻지 못한 영웅의 최후, 초한전쟁

초나라 명문 출신 항우는 진나라 멸망 후 천하의 패자가 되었으나, 정치력과 민심에서 유방에 밀려 초한전쟁에서 패했다. 해하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그는 우희와 이별하며 자결했고, 무용은 빛났으나 시대를 얻지 못한 비운의 영웅으로 남았다.

태어남과 혈통 – 초나라 명문의 후예

항우(項羽), 본명 항적(項籍)은 기원전 232년, 초나라 회계군(會稽郡, 지금의 저장성 소흥)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초나라 명장 항연(項燕)이며, 아버지 또한 일찍이 전장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나라가 초나라를 멸망시킨 후, 항우는 삼촌 항량(項梁) 밑에서 자랐다.

“항우는 글은 읽기를 끝까지 하지 않았고, 병법도 끝내 익히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들은 것은 잊지 않았고, 힘은 사람을 능가했다.”
— 《사기》 〈항우본기〉

 

그는 문보다는 무에 뛰어난 인물로, 어려서부터 비범한 기개를 드러냈다.

반진의 봉기 – 회계에서 일어선 칼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이 먼저 거병하자 항량과 항우도 회계에서 군을 일으켰다. 항량이 무력과 명망으로 세를 넓히는 동안, 항우는 군대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항량은 전투 중 전사하고, 그 뒤를 이어 항우가 본격적으로 주도권을 잡는다.

기원전 207년, 항우는 거록(鉅鹿)의 싸움에서 진나라 장수 장한(章邯)을 대파하며 천하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항우가 물을 끊고 배를 불사르며 사생결단으로 싸워 승리하였다.”
— 《사기》 〈항우본기〉

 

이 전투는 반진 세력의 분수령이었으며, 항우는 병사들에게 죽을 각오로 싸우게 해 군심을 하나로 모았다.

천하의 패자 – 그러나 정치의 맹점

기원전 206년, 진나라가 멸망하자 항우는 함양으로 입성한 유방보다 늦게 도착한다. 당시 유방은 진나라를 관용으로 다스리려 했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항우는 함양에서 진왕 자영과 승상 조고를 참수하고, 진나라 궁실과 아방궁을 불태우는 과격한 처분을 단행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제후 18인을 나누어 봉하고 스스로 서초패왕(西楚霸王)이라 칭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민심을 잃는 계기가 되었고, 유방을 한중으로 밀어내는 결정은 훗날 자신의 몰락을 초래한다.

“항우는 흉포하고 잔인하며 의심이 많았다. 패자에겐 능했으나, 왕도에는 어두웠다.”
— 《사기》 〈고조본기〉

초한전쟁 – 유방과의 5년 혈투

기원전 206년부터 202년까지, 항우는 유방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 기원전 205년, 팽성 전투에서 항우는 유방 군을 기습해 대승을 거두며 유방을 간신히 탈출하게 만든다.
  • 그러나 유방은 한신, 장량, 소하의 지원으로 서서히 제후들을 규합한다.
  • 한신은 초나라 후방을 공략하여 조, 위, 연, 제를 차례로 점령하며 항우의 입지를 좁힌다.

항우는 몇 차례 협상을 시도했으나, 유방의 기만과 외교전술에 밀려 지속적으로 전선이 무너졌다.

최후의 결전 – 해하에서 부른 절창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 전투에서 항우는 유방-한신 연합군에 포위되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즉 적군이 초나라 노래를 불러 초나라 병사들의 마음을 흔들자, 항우는 사기가 무너진 군대를 수습하지 못했다.

그는 연인 우희(虞姬)와 이별하고, “해하가(垓下歌)”를 읊으며 최후를 준비했다. 항우는 탈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오강(烏江)에서 “하늘이 나를 버렸다”며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했다.

 

해하가 (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 기개세
산을 뽑을 힘이 있었고, 세상을 덮을 기운이 있었건만

 

時不利兮騅不逝
시불리혜 추불서
때가 나를 따르지 않으니, 나의 명마 추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騅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 가내하
추가 달리지 않으니, 이 어찌한단 말인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혜 우혜 내약하
우여, 우여, 너를 어찌하리오

 

이 시는 항우가 모든 것을 잃은 채, 말과 연인을 붙잡고 읊조린 절절한 심정이 담겨 있어 천하를 뒤흔든 영웅의 가장 인간적인 순간을 보여준다. 짧지만 항우의 비극적인 감정과 운명을 담고 있어 중국 고대문학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해설

  • ‘역발산기개세’는 항우의 강대한 힘과 기상을 상징하며, 이 구절은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인물의 상징으로 인용된다.
  • ‘시불리’는 자신의 패배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아서임을 한탄하는 구절이다.
  • ‘추’는 항우가 타던 명마의 이름이다.
  • ‘우’는 항우의 애첩 우희(虞姬)를 뜻하며, 마지막 구절은 그녀와 함께 죽을 운명을 한탄하며 지은 애절한 탄식이다.

마무리 – 패왕은 왜 패했는가

항우는 무용과 기세에 있어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포용력과 인재 활용의 측면에서 유방에 뒤처졌다. 그가 죽은 뒤, 많은 장수가 “항우는 싸움은 잘했지만, 천하를 다스리는 그릇은 아니었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항우는 여전히 ‘지지 않는 싸움을 원했으나,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비운의 영웅’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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