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노지의 변,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 이유
오다 노부나가의 말년 – 천하통일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1580년대 초, 오다 노부나가는 사실상 일본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미 다케다, 아자이, 아사쿠라, 이마가와, 미요시 등의 유력 세력은 궤멸하거나 복속되었고, 모리, 우에스기, 호조 등 동서강국도 점차 노부나가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노부나가는 1582년, 시코쿠 정벌을 위해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와 동시에 우에스기 가게카쓰(上杉景勝)에 대한 방비를 위해 토요토미 히데나가와 미나미 간토 지역에 진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그 해 5월, 히데요시는 서국(西国)의 모리 가문을 압박하고 있었고, 그 최종전을 위해 노부나가는 교토 인근의 사찰 ‘혼노지(本能寺)’에 머무르며 군세 재정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천하통일의 마지막 단계에 돌입하고 있었던 셈이다.
혼노지의 변 – 1582년 6월 2일, 새벽의 배신
1582년 6월 2일 새벽, 노부나가의 중신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는 突如(돌연) 반란을 일으킨다.
『信長公記』에 따르면, 미쓰히데는 약 1만 3천의 병력을 이끌고 혼노지를 포위하고 습격하였다. 노부나가는 경호병을 거의 대동하지 않고, 소수의 시종들과 함께 혼노지에 머물고 있었으며, 무장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공격이 시작되자 노부나가는 활과 창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太閤記(태합기)』에 따르면, 그는 불에 휩싸인 본당 안에서 자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노부나가는 가슴에 단도를 찔러넣은 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 가장 널리 알려진 기록이다. 불길은 혼노지 전체를 삼켰고, 시신은 완전히 소실되어 발견되지 않았다.
이 점 때문에 훗날 음모론과 설화가 생겨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료는 노부나가의 최후를 ‘자결’로 일치되게 묘사하고 있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 이유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 이유는 사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다.
- 『惟任退治記(이닌퇴치기)』 등에서는
→ “노부나가가 미쓰히데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그 가신을 죽이는 등의 수모를 주었기 때문”이라 기록되어 있다. - 『信長公記』에는 명확한 반란 동기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 개인적 원한과 정권 탈취의 야심이 동시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 해석이다. - 일부 후대 설화에서는,
→ “노부나가의 과격한 정치 개혁과 종교 탄압, 공포정치에 대한 엘리트층의 반발이 반란의 배경”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 아케치 미쓰히데는 그 이후 13일 만에 야마자키 전투에서 패배하고 처형되었기 때문에, 그 진의를 밝혀줄 증언도 남아 있지 않다.
일본 통일 전쟁의 흐름을 바꾼 순간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은 단순한 1인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가 계획하던 천하통일은 즉시 중단되었고, 권력 공백 상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 공백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하시바 히데요시가 “천하의 복수자”를 자처하며 가장 빠르게 반응하였다.
1582년 6월 13일, 히데요시는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격파하고 그의 목을 베었다. 이후 그는 신속하게 노부나가의 유족과 가신들을 포섭하여,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였다.
히데요시는 자신을 “노부나가의 유지를 계승한 자”로 내세우며 전국을 다시 평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노부나가가 이루지 못한 천하통일을 대신 완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론 – 불타버린 비전, 이어진 유산
혼노지의 불길 속에서 사라진 것은 단지 오다 노부나가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었다.
그가 구상한 새로운 일본, 새로운 질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 중앙집권과 근대적 군제 개편이라는 혁명적 이상 또한 불에 타버렸다.
그러나 그의 부하였던 히데요시가 그 유산을 잇고, 그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 완성을 정비함으로써, 노부나가는 죽어서 일본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다.
오늘날 일본의 역사에서, 혼노지의 변은 단순한 쿠데타가 아니라 근세 일본을 만들어낸 거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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