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역사

제2차 대전 최대 비밀작전 '울트라': 블레츨리 파크 에니그마 해독 프로젝트와 숨겨진 영웅들

오늘의 기록자 2025. 6. 11. 12:32

제2차 대전 최대 비밀작전 '울트라': 블레츨리 파크 에니그마 해독 프로젝트와 숨겨진 영웅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2차 세계대전사에서 가장 극비로 진행되었던 프로젝트 중 하나인 블레츨리 파크의 에니그마 해독 작전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많이 알려진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넘어, 그곳에서 벌어진 진정한 지적 혁명과 현대 컴퓨터 시대의 출발점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절망적 상황에서 시작된 불가능한 도전

1939년 9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군의 무자비한 공세는 매일같이 런던 시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했으며, 24시간마다 암호체계를 바꾸는 독일군으로 인해 전장에서는 1초에 3명꼴로 군인들이 죽어 나가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연합군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정보전에서의 완전한 열세였다. 독일군은 '에니그마(Enigma)'라는 혁신적인 암호기를 통해 모든 군사 통신을 암호화했다. 이 기계가 만들어낸 암호의 경우의 수는 무려 158,962,555,217,826,360,000가지에 달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 암호 체계가 매일 밤 12시마다 완전히 바뀐다는 점이었다.

 

영국군은 매일 독일군의 무전을 도청했지만, 그 내용을 해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설령 누군가가 천신만고 끝에 암호를 풀어내더라도, 24시간 안에 완료하지 못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블레츨리 파크: 천재들의 비밀 집결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1938년 런던 북쪽 64km 지점의 한적한 농촌 지역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 저택을 비밀 시설로 개조했다. 영국 정부는 전운이 감돌던 1938년 블레츨리 파크에 정부암호학교(GC&CS)를 세웠고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과 체스 챔피언, 낱말 풀이 전문가 등 괴짜 수재들을 모았다.

 

블레츨리 파크, 이미지 출처 : 영국의 Draco 2008

 

이곳의 공식 명칭은 '영국 정부 암호학교'였지만, 보안을 위해 'Station X' 또는 'Room 40'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 블레츨리 파크에는 수학자, 언어학자, 체스 챔피언, 십자말풀이 전문가, 심지어 전직 우체국 기술자까지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모였다.

 

흥미롭게도 이들 대부분은 전통적인 의미의 '군사 전문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퍼즐과 논리적 사고에 뛰어난 민간인들이었다. 앨런 튜링조차 독일어를 전혀 하지 못했지만, "독일어는 몰라도 퍼즐은 정말 잘 푼다"며 자신 있게 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폴란드 수학자들의 선구적 업적

에니그마 해독의 첫 번째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1932년 12월 폴란드 암호국은 프랑스 정보기관이 붙잡은 독일군 스파이로부터 단서를 얻어 이 암호 체계를 처음으로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마리안 아담 레예프스키를 비롯한 폴란드 수학자들이 에니그마의 기본 구조를 파악한 것이다.

 

1939년 7월, 독일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감지한 폴란드는 자신들이 축적한 모든 에니그마 관련 자료를 영국과 프랑스에 전달했다. 이는 후에 블레츨리 파크의 성공에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앨런 튜링과 '봄브'의 탄생

1938년 블레츨리 파크에 합류한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에니그마 해독에 혁신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는 "기계가 만든 암호는 기계가 풀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폴란드 수학자들의 연구를 발전시켜 '봄브(Bombe)'라는 전기기계식 암호 해독 장치를 개발했다.

 

봄브는 상대방이 전할 메시지를 암호로 만들 때 설정한 에니그마의 암호 규칙, 기계 내부 원반의 초기 설정값, 에니그마 내부의 전기 배선 연결 상태값 등을 먼저 알아냈다. 그다음 에니그마가 메시지를 암호문으로 만드는 원리를 거꾸로 적용해 암호문을 원래 메시지로 해석했다.

 

튜링의 봄브는 에니그마의 구조적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에니그마는 반사판의 존재로 인해 평문의 어떤 글자도 자기 자신으로 암호화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튜링은 이를 '크립(crib)'이라는 기지 평문 공격법으로 활용했다.

울트라 작전: 세기의 정보전 승리

1940년 5월부터 블레츨리 파크는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문 해독에 성공한 이 작전은 '울트라(Ultra)'라는 코드명으로 불렸다. 덕분에 영국군은 독일군 공세가 예상되는 시기와 지점을 미리 파악해 대비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물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울트라 작전의 성과는 실로 경이적이었다. 1943년부터는 대부분의 독일 에니그마 암호문은 하루나 이틀 안에 해독되고 있었지만, 독일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연합군은 독일군의 모든 작전 계획을 미리 알 수 있었고, 이는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배틀 오브 브리튼에서 영국 공군이 독일 공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블레츨리 파크의 정보 지원 덕분이었다.

콜로서스: 컴퓨터 시대의 개막

1943년, 블레츨리 파크에는 또 다른 혁신이 등장했다. 독일군이 더욱 복잡한 '로렌츠 암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수학자 맥스 뉴먼과 우체국 기술자 토미 플라워스가 손을 잡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콜로서스(Colossus)'였다. 이는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자 디지털 컴퓨터였다. 콜로서스는 암호문을 구멍 뚫린 종이테이프 형태로 입력받아, 이를 빛으로 읽어 들였다. 이 기계는 로렌츠 암호의 복잡한 패턴을 분석하고 통계적 계산을 통해 암호 해독에 필요한 키 설정을 찾아냈다. 이때 자료 분석 처리 속도는 초당 5000 단어까지 비교가 가능했다.

 

1944년 6월 1일 완성된 콜로서스 마크 2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5일 전에 가동되어 작전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쟁 종료 시점에는 총 10대의 콜로서스가 가동되고 있었다.

숨겨진 영웅들: 여성 암호해독가들

블레츨리 파크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무명의 영웅들이 있었다. 블레츨리 파크에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여성들도 많이 근무했다. 1923년 태어나 18세 나이에 영국 육군에 자원 입대한 베티 웹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블레츨리 파크 직원의 약 75%가 여성이었다. 이들은 암호 해독, 통신 분석, 번역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지만, 그들의 공헌은 수십 년간 비밀에 부쳐졌다. 베티 웹의 부모는 딸이 암호 해독가라는 사실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철저한 비밀 유지와 역사적 평가

블레츨리 파크의 활동은 전후 30년간 완전히 비밀에 부쳐졌다. 당시 군사 기밀이었던 이 내용은 정부의 비밀 정책에 따라 30년 동안이나 숨겨야 했다. 심지어 설계도까지 모두 없애고, 조직원들에게 비밀 유지서약을 받았다. 콜로서스의 존재는 1975년이 돼서야 영국 정부의 사진 공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러한 극도의 보안 유지로 인해 블레츨리 파크의 업적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콜로서스보다 2년이나 늦게 개발된 미국의 에니악(ENIAC)이 '최초의 컴퓨터'로 인정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적 함의: 다양성과 협업의 힘

블레츨리 파크의 성공은 단순히 기술적 우수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의 협업이었다. 수학자, 언어학자, 체스 선수, 십자말풀이 전문가, 기술자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결합했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였던 에니그마 해독이 가능했다.

 

미시간 대학교의 스콧 E. 페이지 교수는 이를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Diversity trumps ability)'는 이론으로 설명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동질적인 천재들보다는 이질적인 재능들의 조합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이나 현대의 AI 개발팀들이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적극 채용하는 것도 블레츨리 파크의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에니그마 해독이 바꾼 역사

일부 연구에 따르면 블레츨리 파크의 활동이 전쟁을 2년가량 단축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가된다.

 

더 나아가 블레츨리 파크는 현대 정보 사회의 토대를 마련했다. 컴퓨터의 개념, 프로그래밍의 원리, 사이버 보안의 개념 모두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앨런 튜링이 1950년 제시한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의 출발점이 되었고, 2023년 블레츨리 파크에서 개최된 AI 안전 정상회의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

맺음말

블레츨리 파크의 이야기는 단순한 전쟁 영웅담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창의성과 협업 정신이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사의 교훈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인터넷, AI 기술 모두가 이 작은 영국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지적 혁명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블레츨리 파크는 진정 '현대 문명의 요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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